서울역 근처 까페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떠오르는 책이 있었어요. 바로 이랑주님의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입니다.
“만약 카페의 로고로 노란 토끼를 만들었다면, 그 노란 토끼가 매장의 주요한 곳들에서 노출되어야 한다. 간판에만 노란 토끼가 있는 게 아니라, 손님들이 보는 메뉴판에서도 보이고, 매장에 걸린 액자 속에도 노란 토끼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화장실에 걸려야 하는 수건의 색은? 당연히 노란색이 되는 것이다. 노란 토끼 로고라는 시각적 정보가 화장실에 걸린 폭신한 노란 수건의 촉감으로 이어질 때, 사람들은 이 매장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기억되고 싶으면 반복하고, 연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벽에 노란 토끼 그림을 크게 그려놓아도, 그것이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와! 멋진 그림이 있네.’로 끝난다. 다른 자극을 받았을 때 자동적으로 연상도는 기억으로까지 저장되지는 않는 것이다.”
의자, 포스터, 커피잔, 접시, 화분, 트레이, 사인, 키친클로스, 드리퍼, 드립백이 담긴 통… 시선이 멈추는 모든 곳에 시원하고 세련된 블루컬러가 보입니다. 이 정도면 여기 사장님의 디자인 감각이 어느 정도인지 예상이 됩니다. 창고에 보이는 저 파란 포대자루마저 제작한 게 아닐까 감히 의심도 해보고요. 의자, 찻잔, 접시까지는 신경을 대개 씁니다만 인테리어 전체에 이런 디테일을 보여준 곳은 처음 봤습니다.
이런 센스면 사장님은 절대 맛없는 음식을 내놓지 않을 겁니다. 역시나 음식이 정말 맛있었어요. 더 먹고 싶을 정도로요. 조금 아쉬운 점은 따뜻한 라떼를 파란색 잔에 마시니 금방 식을 것 같은 느낌을 주더라고요. 따뜻한 음료는 밝은 색 잔이 더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컬러가 주는 힘은 세니까요. 디자이너의 시선입니다. ^^
누군가 매장 인테리어를 고민한다면 이 곳을 추천해줘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컬러를 집요하게 반복해서 보여주니 이 카페의 아이덴티티 컬러가 금방 각인이 됩니다. 아마도 화장실 수건마저도 블루컬러가 아니었을까 예상해봅니다.
그 자리를 떠나도 그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브랜드라면 브랜딩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 나쁜 기억력 탓이 큰데 카페 이름이 기억이 안 납니다. 무슨 약자였던 것 같아요. 만약 이 곳이 블루보틀 같은 이름이었다면 쉽게 기억났을 것 같아요. 브랜딩이란 게 단시간에 해결되는 게 아닌 거죠. :p
한 번 봤는데도 기억나는 브랜드
동네를 지나다니다 빅사이즈 옷을 파는 가게를 봤어요. 아하하. 너무나 직관적인 가게이름과 심플한 간판을 보고 지나치지 못해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간판이 정말 컸어요. 빅사이즈라는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고 자신있게 드러낸 저 자태가 얼마나 자신만만해 보이던지요. 때로는 꾸밈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어느 누가 빅사이즈 옷을 찾는다면 전 단번에 이 가게를 알려주겠어요. 이름도 금방 기억이 나니 바이럴 하기에도 너무 좋군요. ^^
언젠가 브랜드 미용실을 갔습니다. 저는 따라간 것이었는데 대기하는 저한테도 황송한 대접을 해주더군요. 다른 곳은 보통 음료 한 잔과 과자 한 두개가 고작이었어요. ‘고작’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아래 사진의 비주얼을 보세요. 이 곳 사장님의 마인드가 보이지 않나요. 먹는 걸로 째째해지지 말자는 철학을 가진 분일 수도 있고, 인심이 후한 대표님일 수도 있겠습니다. 별 거 아닌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제 아이는… 말 할 필요도 없겠지요.
예전에 전통시장에서 붕어빵을 사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가족으로 보이는 분에게 맛을 보라며 붕어빵 하나를 건네더군요. 저였다면 바로 앞에서 오래 기다리는 사람한테도 서비스로 하나 줬을 것 같아요. 미니 붕어빵이라 손해볼 일도 없어 보였고요. 그 때 하나 건네받았다면 고마운 마음에 전 또 거길 갔을텐데요. 그래서 미용실 간식에 더 눈이 갔던 것 같아요.
브랜딩이라고 하면 뭐가 거창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주변을 보면 나름의 방식으로 고유함을 표현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동네 아파트 상가의 허름한 작은 빵집은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작고 눈에 띄지 않아서 그 곳을 지나다니면서도 빵집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손님들이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감자빵과 올리브빵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하더군요. 앞의 카페와의 간극이 너무나 큰 빵집이지만 강산도 변한다는 기간 동안에도 가게를 유지하고 있음이 놀라웠습니다. 브랜딩이라는 말을 몰라도 빵이 맛있으니 사람들이 계속 찾습니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고유성을 잘 살리려면 역시 본질강화는 기본인 것 같습니다. 브런치 카페인데 음식 맛이 없다면, 빵집인데 빵이 맛이 없다면 사람들은 금방 알아챌테니까요. 중요한 것들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기본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아요.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내 브랜드의 정체성이 되지 않을까요.